[신문로] 디커플링 기로에 선 중국의 개혁개방 실험
2020-05-25 12:41:23 내일신문 게재, 이창열 AP글로벌컨설팅 중국센터장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적인 불황이 우려되는 가운데 중국은 과감한 도시봉쇄 등의 선제적 방역조치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발병 책임 논란을 떠나 중국은 코로나19와 같은 미지의 상황에 대처하는
실험에 익숙하다는 느낌이다. 코로나19 대응에 일조한 것으로 알려진 청폐배독탕(淸肺排毒湯) 등 중의학
치료 역시 수천년 임상실험의 산물이다.
지난 40년간 중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개혁개방 또한 일련의 실험과정이다. 기존의 경제이론에 바탕
하기보다 현장에서 각종 실험을 통해 체제안정과 경제발전을 병행할 수 있다고 확인되는 최적조합들을 찾
아서 적용해왔다.
사회주의 체제와 시장경제 제도의 조합에는 정답이 없다. 최적의 발전경로를 찾기 위한 지침이 된 명제가
1978년 개혁개방 초기에 나온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표준’(??是???理的唯一?准)이다. 사회주의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서 경제발전을 이루는 방안이 ‘진리’이며, 진리는 현장에서 ‘검증’될 때 인정된다는 것이다.
개혁개방 실험의 대표적 사례가 토지사용권 제도와 농가생산도급제다. 토지사용권 제도는 ‘국유제’ 틀을
유지하면서 ‘사적소유’를 우회적으로 인정해 토지자원 사용 효율을 크게 제고했다. 농가생산도급제도 ‘농가’
단위의 도급제 생산을 허용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개인’의 사적소유를 우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과생산
물의 개인 배분을 인정하는 ‘도급제’를 실시해 농업증산을 이루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
면 된다’는 흑묘백묘론(白猫黑猫?)의 대표적 적용사례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조합엔 정답 없어 중국의 이러한 개혁개방 실험은 억눌렸던 생산력을 해방시켰고
개혁개방 25년 만인 2013년 IMF의 구매력 기준 GDP 평가에서 미국을 추월했다. 시장가격 GDP 기준으로도
1980년 미국의 7%에서 2019년 66%에 도달했다.
향후 중국경제가 순항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노동력의 고령화, 지방정부 부채 과다, 기술
도입의 한계, 국유기업의 비효율성 등으로 지금부터는 한계를 보일 것이라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는다.
최근 미중 경제전쟁은 이러한 우려를 가중시켰고,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체인의 이탈 조짐 또한 중국의
세계공장 역할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블랙스완’이 발생한 상황에서도 코로나19 정점을 기준으로 미국 다우지수는 17% 하
락한 반면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8%만 하락하는 등 여전히 저력을 보인다.
2019년 9월 세계지식인포럼에서 세계은행 수석부총재를 지낸 린이푸 베이징대 교수는 니얼 퍼거슨 하버드
대 교수에게 ‘20년 내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다’면서 200만 달러 내기를 제안했다. 중국이 14억 소비인구를
기반으로 하는 내생적 성장기반을 갖췄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전략적으로 육성한 AI 빅데이터 5G 등
미래신산업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지난해 11월 1일 중국이 데이터를 자본 노동 기
술과 함께 생산요소의 하나로 국가자산에 포함한 조치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경제성장에 대한 상반되는 견해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문제는 중국경제 발전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길이 편치만은 않다는 점이다. 중국이 세계경제 대국이
된 후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국 주도의 탈(脫)중국 글로벌 공급망
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까지 제기되고 있다.
중국경제 발전을 편하게 보지 못하는 이유
5월 22일 중국 양회의 2020년 정부 업무보고는 경제성장률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1949년 신중국 탄생
이후 처음이다. 이것은 중국경제가 거대한 내수시장에도 불구하고 요동치는 세계경제와 여전히 불가분의
관계임을 시사한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개혁개방 40주년 기념식에서 “중국은 세계평화와 발전을 위해 중국의 지혜, 중국식
방안, 중국의 역량을 보여줄 것”이라고 선언했다. 세계는 중국이 보여줄 ‘중국식’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인
지 지켜보고 있다. 중국 경제성장을 견인해온 개혁개방 실험의 대장정이 세계가 축복하는 경제대국으로
결실을 맺느냐, 세계와 디커플링된 경제대국의 길을 걷느냐하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