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역치의 삼협댐, 순치의 도강언
2020-08-21 12:37:16 내일신문 게재, 이창열 AP글로벌컨설팅 중국센터장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18일부터 장강 유역을 강타한 제5차 홍수로 20일 산샤댐(三峽, 삼협댐)에 초당 7만5000㎥라는 사상 최대량
의 물이 유입되면서 댐의 안전이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세계최대 수력발전댐인 삼협댐은 전력생산과 홍
수방지 관개용수 등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건설된 지 14년 만에 댐 구조물 변형 등 안전문제가 제기되
고 있다.
역설적으로 2300년 전 장강 상류 민강(岷江)의 홍수를 막기 위해 만든 두장옌(都江堰, 도강언)은 오늘날까
지도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도강언은 기원전 256년 진나라 군수 리빙(李?)이 강 중간에 축조한 긴 깔
대기 모양의 물길조절 제방이다.
‘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다스린다’는 중국 치수 역사의 상징이기도 한 도강언은 2002년 세계문화유산으
로 등재되었다.
도강언의 우수한 점은 단순히 홍수방지에 머물지 않고, 강물을 삶을 풍부하게 하는 자원으로 활용하는 백년
대계를 담았다는 데 있다. 강물을 둘로 가르는 긴 제방을 강 중간에 건설해 수량의 반을 사천성 평야의 관개
용수로 활용한 것이다. 사천평원으로 가는 물길을 막는 돌산이 있었으나 낙담하지 않았다. 돌산을 장작불로
가열한 후 찬물로 급냉시켜 균열을 낸 후 암반을 일일이 정으로 깨트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우공이산’ 정
신으로 마침내 수로를 뚫었다.
전인대 33%가 반대·기권한 삼협댐 건설
물길이 열림으로써 사천평원이 곡창지대로 변하고 사천성은 중국에서 물산이 풍부한 지방(天府之?)으로 불
리게 된다. 삼국시대 제갈공명이 사천성에 촉의 도읍을 정한 것도 산으로 둘러싸인 고원지대이자 험준한 출
입로로 방어에 유리했을 뿐만 아니라 도강언이 가져온 풍부한 물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천성이 풍요로워
지면서 도강언 서남쪽 청성산에서 도교가 발흥했고 8세기 중엽 도교 도사가 불로장생약 실험 중에 화약을
발명하기도 한다.
도강언의 또 다른 우수성은 물길 자체의 힘으로 홍수를 조절하는 제방 구조다. 범람하는 물길이 곡창지대
방향의 강변 암벽에 부딪힌 후 원래의 민강 방향으로 되돌아가도록 했다. 또한 강바닥에 퇴적물이 쌓여 홍
수대응 능력이 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강 중간 제방을 중심으로 양쪽 강바닥 높이를 달리함으로써 물살이
강바닥을 휘감아 퇴적물을 휩쓸고 가게 했다.
도강언이 건설된 지 2262년이 지난 2006년에 건설된 삼협댐은 20세기 초 쑨원이 구상한 이후 지속적으로 논
의되다가 장쩌민 주석 시절에 12년의 공사로 완공되었다. 건설결정 당시 전력생산과 홍수조절이 강조되었
으나 엄청난 수압으로 인한 재해 우려와 역사유적의 수장, 주민 강제이주 등의 문제로 이견이 많았다. 결국
1992년 4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찬성 1767표, 반대 177표, 기권 664표로 통과되었다. 반대표가 거의 없
는 중국의 정치관행상 반대성향의 표 33%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의 속성에 순응한 순치(?治)의 도강언과 물의 속성을 거스른 역치(逆治)의 삼협댐은 여러 부분에서 비교
가 된다. 우선 도강언은 현장조사를 통해 최대한 물의 속성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지었다는 점에서, 전력
생산을 위한 물막이 방식의 댐 건설에 치중해 물의 저항에 시달리는 삼협댐보다 지속가능성이 높다. 세계
여러나라가 댐을 허물어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 에너지 공급원을 다원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도 삼협댐의
건설은 다소 성급했다는 느낌이다.
도강언이 수자원을 지역 전체에 종합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도 수자원을 전력생산에 우선 사용한 삼협댐
보다 삶의 풍요에 기여한 비율이 크다고 생각된다. 중국 최대의 강인 장강의 거대한 수량을 관리하는 삼협
댐과 같은 ‘천년대계’는 국토 전체의 물관리 차원에서 추진되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쪽의 풍부
한 수자원을 물 부족에 시달리는 북쪽으로 조달하는 남수북조(南水北?) 사업과의 연계를 더 강화하는 식의
물관리가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었을 것이다.
대규모 국책사업 순리에 맞게 추진해야
물의 이치에 순응하면서 삶의 풍요를 일구어낸 도강언의 정신은 우리에게도 교훈을 남긴다. 골이 깊으면
채워서 가고, 산에 막히면 돌아서 가는 물의 속성이 최고의 선이라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이치처럼
우리의 수자원 개발이나 원자력 발전과 같은 국책사업들도 당면 과제에 집착해 무리하지 말고 인간과
환경의 조화로운 삶을 생각하면서 순리에 맞게 추진했으면 한다.
